정의선, ‘룰 브레이커’에서 ‘게임체인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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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th Story] ‘자동차 기업’ → ‘모빌리티 기업’ 향하는 현대차그룹

● 피크아웃 우려 불식하고 ‘톱3’ 안착
● 정몽구 시대 끝내고 새 체제 구축해 위기 극복
● ‘파괴적 혁신’ 이어가는 룰 브레이커
● 현대차그룹의 맹아(萌芽), ‘현대자동차공업사’
● 정주영 통찰에 ‘포니 정’ 노력 더해져 글로벌 기업 성장
● 판 바꾼 정몽구 승부수 ‘10년·10만 마일’ 보증
● 1위 도약하려면? ‘자동차’ 넘어라!


9월 30일 현대차그룹 울산 출고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누적 생산 1억 대 달성 및 1억 1번째 생산 차량 출차 기념 행사’에서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
현대자동차(현대차)그룹의 혁신·성장·호조세가 무섭다. 9월 30일 기준, 현대차는 1967년 창립 이후 57년 만에 차량 누적 생산량 1억 대를 돌파했다. 세계 주요 완성차 브랜드 가운데 독일 폴크스바겐과 일본 도요타, 미국 포드 등 소수 업체만 보유한 대기록이다. 이날 세리머니에서 현대차는 ‘1억 번째’가 아니라 ‘1억 1번째’ 생산한 차량에 방점을 찍으며 자사의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오닉5’ 출차 행사를 했다. 전동화 시기 ‘퍼스트무버’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8월엔 현대차와 기아가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모두 A등급을 받는 ‘트리플 크라운’을 나란히 달성했다. 두 회사 모두 창사 후 처음이다. 안정적 판매량(올 상반기 기준 합산 361만 대·세계 3위)과 업계 최고 영업이익률(현대차 9.1%, 기아 13.1%)을 낸 데다가, 성장 가능성도 높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완성차 기업들의 경우 기록 달성까지 60년 이상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의미가 크다. 트리플 크라운 달성에 대해 미국 AP통신, 월스트리트저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금융 전문 매체 벤징가(BENZINGA), 싱가포르 일간지 아시아원 등 해외 주요 언론도 관련 소식을 다뤘다. 외신들은 한국 자동차 브랜드에어 의미 있는 이정표(성과)이며, 글로벌 모빌리티산업에서 현대차·기아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글로벌 모빌리티산업 리더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고도 바라봤다.

현대차·기아는 경영 성적에서도 피크아웃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며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올해 상반기 합산 매출액은 139조4599억 원, 합산 영업이익은 14조9059억 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원화 환산)에서 2위 폴크스바겐과의 차이가 300억 원가량에 불과하다. 영업이익률 증가 측면에선 글로벌 ‘톱5’(2023년 판매량 기준)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현대차그룹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현대차(제네시스 포함) 9.1%, 기아 13.1% 등 합산 10.7%다. 도요타그룹(10.6%)과 폴크스바겐(6.3%), 르노-닛산-미쓰비시(4.2%), 스텔란티스(10.0%)를 모두 앞섰다.

차량 판매 대수로 놓고 보면 도요타그룹(516만2000대)과 폴크스바겐그룹(434만8000대)에 이어 3위다. 이 기세라면 올해도 현대차는 글로벌 판매 ‘톱3’ 달성이 유력하다. 이러한 실적에 힘입어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마진율은 1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 회계 지표인 EBITDA는 이자비용과 세금, 감가상각 등을 차감하기 전 이익을 일컫는다. 이 지표가 높을수록 기업이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 즉 현금 창출 능력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2020년 10월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글로벌 판매 순위 상승뿐 아니라 시가총액도 크게 늘었다. 현대차그룹주 시총(상장사 12개 기준, 9월 기준)은 약 153조 원으로 정 회장 취임 전 대비 48조 원가량 늘었다. 4년여 동안 시가총액이 45% 증가한 셈이다. 현대차 인도법인이 올해 안에 인도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그룹 시가총액 200조 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인도법인의 기업가치는 190억 달러(약 26조 원)로 추정된다.

정의선, 친정 체제 구축으로 내우외환 돌파
사실 정의선 회장 체제가 시작될 무렵만 해도 현대차그룹은 안팎에서 위기를 맞이한 터였다. 정 회장이 실질적으로 그룹 수장으로서 전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때는 수석부회장 취임 직후인 2018년. 당시 글로벌 경영 환경은 극히 불투명했고, 현대차그룹도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었다.

그해 현대차그룹은 신용등급 강등 수모를 당해야 했다. 당시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현대차·기아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떨어뜨렸다. S&P는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 시장 지위 약화, 글로벌 자동차 수요 둔화 등을 이유로 수익성이 악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인해 중국 시장에서 타격을 받으면서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합산 판매량은 2016년 793만 대에서 2017년 729만 대로 8% 이상 줄었다. 영업이익률도 현대차 2.5%, 기아 2.1%에 머물렀다.

정 회장은 내연기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면서도 친환경차와 미래 모빌리티 분야 혁신을 선도해야 했다. 이에 그는 친정 체제 구축으로 자신만의 경영을 시작했다.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이 되고 3개월 만인 그해 12월, 2019년 임원 인사를 통해 마치 오랫동안 준비해 온 듯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의 ‘가신 그룹’인 부회장단을 용퇴시켰다.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이 현대제철 부회장으로,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이 현대로템 부회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정진행 현대차 전략기획담당(사장)은 현대건설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다만 이는 표면적 이동과 승진이었다. 이들은 상근직 부회장의 대우를 받았을 뿐 등기임원이 아니게 됐고, 특별한 업무도 명시되지 않았다. 급기야 2년 후인 2021년 3월 분기보고서에서는 그 이름들마저 사라졌다.

김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해외시장 개척을 이끈 영업통으로, ‘왕의 남자’로 불릴 만큼 정몽구 명예회장의 최측근이었다. 현대차그룹의 대표적 전략통으로 꼽힌 정 부회장은 2011년 그룹 TF팀을 이끌며 현대건설 인수를 주도했다. 이후엔 현대차그룹 대관 업무를 총괄했다. 정 부회장은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윤석열 정부)과 사촌 관계로 정계에도 인맥이 넓었다. 우 부회장은 ‘밀크스틸’이란 별명이 생길 만큼 현대차그룹이 현대제철을 인수하는 데 주역 을 맡았다. 2009년 제철 사업 총괄사장에 올랐고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건설을 주도한, 그 역시 정몽구 명예회장의 최측근 가운데 한 명이었다.

또 현대차·기아 연구개발담당을 맡던 양웅철 부회장, 연구개발본부장을 지낸 권문식 부회장은 고문으로 위촉됐다. R&D(연구개발) 부문을 이끌던 두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여기에 정몽구 명예회장 곁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임영득 현대모비스 사장, 조원장 현대다이모스 사장, 강학서 현대제철 사장, 김승탁 현대로템 사장 등도 고문으로 위촉했다.

2021년 12월 윤여철 부회장이 부회장단 가운데 마지막으로 물러난 이후 현대차그룹엔 지금까지 부회장 승진 및 임명이 없으며, 그룹 내 부회장은 친인척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유일하다. 부친의 가신 그룹에 대한 정의선 회장의 인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1999년 3월 현대차 주주총회에서 이사들을 자기 사람으로 채워 이른바 ‘정세영 쿠데타’를 일으킨 정세영 전 HDC그룹 명예회장(당시 현대차 명예회장)이 불과 사흘 만에 퇴진하고 정몽구 당시 회장이 친정 체제를 구축할 때와 흡사했다. 김판곤 당시 부사장 등 이른바 ‘정세영 사람’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비서 출신인 이전갑 부사장, 정몽구 명예회장의 핵심 측근인 이계안 기획조정실장 등이 현대차를 장악한 바 있다.

정의선 회장은 2019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기존 임원 150여 명을 퇴임시키는 대신 2018년 정기 임원 인사 때(115명)보다 많은 141명의 신규 임원(이사 대우)을 임명하며 부회장 및 사장단에 이어 임원진도 ‘세대교체’했다. 조직을 젊게 변화시켜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동시에 ‘자동차 넘어’라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큰 그림이 반영된 것으로 읽혔다.

정주영으로부터 이어진 파괴적 혁신 DNA
4월 12일 글로벌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세계 자동차산업의 위대한 파괴적 혁신가들’ 시상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올해의 최고 혁신가’로 선정하며 표지모델로 삼았다. [현대차]
세계적 경영학자인 게리 하멜(Gary Hamel) 런던비즈니스스쿨 전략학 교수는 ‘꿀벌과 게릴라’ 등 저서를 통해 기업의 속성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룰 메이커’, 그들을 추종하며 모방하는 ‘룰 테이커(rule taker)’, 그리고 새로운 부를 창조하는 ‘룰 브레이커’다.

구체적으로 룰 메이커는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집단으로 한 산업을 선점하고 그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조직이다. 대표적 예가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같은 회사다. 하멜은 “변방(邊方)이 중심(中心)으로 진입하며 기존 질서(rule maker)를 넘어서려면 단순히 추종하는(rule taker) 차원이 아닌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 고정(기존) 틀을 깨야 한다(rule breaker)”고 했다. 창조적 파괴자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룰 메이커가 만들어놓은 규칙과 시장에서 이들을 추종한다. 낮은 위험(low risk)과 적은 보상(low return)을 영위할 뿐이다. 하멜이 말하는 이상적 기업의 모습은 룰 브레이커다. 이들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룰 테이커 역할을 할 때 과감히 룰을 깨뜨려 도전하고 변화하며 ‘블루오션’을 창출해 나간다.

대표적 인물론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처음엔 인텔이라는 거대한 룰 메이커가 있는 시장에 진입해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들고자 했지만 3D 그래픽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매우 반복적이고 수학 집약적 요구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CPU가 직렬로 계산을 처리하는 것보다 전용 칩을 통한 병렬 처리가 더 빠르다는 것을 파악하면서 룰 브레이커가 됐다. 이제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룰 브레이커를 넘어 지배자가 돼가고 있으며, 젠슨 황 CEO는 ‘제2의 스티브 잡스’로 평가되고 있다.

정 회장은 2018년 총괄수석부회장에 올랐을 때 현대차그룹이 기존 강자들을 추종하는 룰 테이커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무렵 현대차그룹은 완성차 기업으로서 도요타와 유사한 사업 전략을 펼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중 브랜드(현대차·기아-도요타)와 고급 브랜드(제네시스-렉서스)를 동시에 운영하고 수소차 시장에도 일찍 진출한 까닭이다.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브랜드와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독일 브랜드에 비하면 자동차 제조업계의 후발 주자라는 점도 유사했다.

하지만 정 회장의 룰 브레이커로서의 파괴적 혁신은 목적기반차량(PBV), 미래항공교통(AAM) 등 다양한 이동수단을 포괄하는 ‘모빌리티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정 회장 취임 이후 현대차그룹은 완성차를 넘어 다양한 미래 모빌리티를 다루는 ‘모빌리티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기차 분야 선두주자이자 자율주행 로보틱스, 항공·우주 사업을 영위하는 테슬라에 버금가는 혁신성을 갖췄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러한 정 회장의 노력은 그가 글로벌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2022 세계 자동차산업의 위대한 파괴적 혁신가들(The World’s Greatest Auto Disruptors)’ 시상식에서 ‘올해의 최고 혁신가(Visionary of the Year)’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결실을 보았다.

뉴스위크는 “정 회장은 자동차산업에서 현대차·기아의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리더십과 미래를 향한 담대한 비전 아래 모빌리티의 가능성을 재정립하고 인류에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정 회장은 수상 소감에서 “상을 받은 것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자로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모든 임직원 및 협력사들의 헌신적 노력, 사업 파트너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면서 ‘파괴적 혁신’과 ‘룰 브레이커’로서의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정 회장의 파괴적 혁신 DNA는 그의 조부이자 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의 경영 철학이자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사업이 시련에 빠질 때마다 일반적·상식적 길을 가지 않으면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고, 기존의 룰을 파괴하면서 새 길을 열어나가는 경영을 해왔다. 정주영 회장부터 시작돼 정몽구 회장을 거쳐 정의선 회장으로 이어지는 ‘룰 브레이커’ 경영이 지금의 현대차그룹을 있게 했으며, 미래의 현대차그룹도 이끌 것이다.

‘현대’의 시작
정주영 회장은 1915년 빈농 집안 7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1년부터 3년 동안 서당에서 공부하다 송전공립보통학교에 진학했지만 곧 가출을 결심했다. 정 회장은 그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디 가서 어떤 노동을 해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같은 쥐라 해도 뒷간에 있던 쥐는 똥 먹다 도망가고, 광에 있던 쥐는 쌀 먹다 도망간다고 했다.”

19세이던 1934년 봄, 네 번의 가출 시도 끝에 고향을 벗어난 정 회장은 인천 부두에서 막노동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인천과 서울의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전전하다 서울 중구 신당동의 쌀가게 ‘복흥상회’ 배달원으로 취직한다.

주인 이경성은 노름을 일삼던 아들 대신 착실하게 배우고 일하는 정 회장에게 3년간 경영을 맡겼다. 이후 정 회장은 23세에 독립해 쌀가게 이름을 경일상회로 변경,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1939년 12월 일제 치하에서 전시통제령에 따른 일본의 쌀 배급제 시행으로 쌀가게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 정 회장은 쌀을 운반하던 트럭 정비사의 추천으로 1940년 3월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의 ‘아도서비스(Art Service)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해 합작회사로 만들었다. 그는 수리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대신 수리비를 더 많이 받는 전략을 펼쳤다. 그 덕분에 수리 물량은 나날이 급증했지만 아도서비스는 기업정비령 탓에 1943년 3월 대형 정비업체인 일진공작소에 흡수되고 말았다.

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자 서울 중구의 적산(敵産) 부지 200평을 불하받아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사업은 날로 번창해서 1년 만에 종업원 수가 70~80명으로 늘었다. 정 회장은 자동차 수리대금을 받으러 미군 부대를 자주 출입하면서 토건업으로 눈을 돌렸고, 1947년 5월 ‘현대토건사’를 열었다. 1950년 1월엔 두 회사를 합병,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했지만 5개월 만에 6·25전쟁이 터졌다.

부산으로 피난을 간 정 회장은 미군 부대 건설을 맡으면서 사업을 이어나갔다. 휴전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하면서 현대건설은 복구 공사에 뛰어든다. 정 회장은 피란지 부산에서 주한미군 막사 건립을 시작하며 첫째 아우 정인영 HL그룹 명예회장을 끌어들였다.

정인영 회장은 영어에 능통했고, 광복 직후부터 주한미군 통역으로 활동했다. 이에 현대건설은 전국에 산재한 주한미군 토건 공사를 거의 독점했다. 공사 이익은 실행 예산의 5~6배에 달했다. 전시 상황으로 인해 환율이 계약 시점에 비해 급등해서 생긴 원·달러 환차익은 덤이었다.

현대건설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글로벌 무대에 나서기 시작한다. 미국 정부가 파병 대가로 준 해외 진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업을 추진했다. 이때의 경험은 한국 정부가 1968년 2월 착공한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를 현대건설에 맡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주영 끌고 정세영 밀고… 현대차그룹의 성장
일반적 경영자라면 이토록 ‘잘나가던’ 건설 토목 사업에 전념했겠지만 정주영 회장은 새로운 도전에 임한다. 1967년 12월 울산공업단지에 부지 10만 평을 확보하고 현대차(당시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것이다. 정 회장은 고속도로가 놓이면 도로 위를 달릴 자동차가 필요함을 직감했을 것이고, 이 통찰을 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그는 생전에 “뭐든지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한없이 쉬운 게 일이고 인생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고정관념 및 통념에 대한 창의적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룰 브레이커’적 사고(思考)다.

대한민국 1호 자동차 포니. 현[대차]
‌현대차는 착공 8개월 만에 울산공장을 완공하고 1968년 11월 포드의 조립 승용차 ‘코티나’를 양산하면서 자동차 시장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1974년엔 독자 기술로 1238㏄ 엔진을 장착한 승용차 ‘포니’를 생산했다. 시판 첫해인 1976년 포니는 1만726대가 팔렸고, 시장점유율은 43.6%에 달했다. 이는 한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2번째, 세계에선 16번째로 고유 모델 자동차를 보유한 국가가 됐음을 의미했다.

1976년 포니가 에콰도르에 수출되며 현대차는 세계시장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1983년 설립한 캐나다 현지법인(HACI)에서 판매를 시작한 ‘포니2’는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했으며, 1986년에는 미국 현지법인(HMA)을 설립하고 ‘포니엑셀’을 판매해 수입 소형차 부분에서 판매 1위를 달성했다.

올해 2월 미국의 경제전문 방송사 CNBC는 ‘현대차그룹은 어떻게 세계 3위 완성차 그룹이 됐나(How Hyundai Became The Third Largest Automaker In The World)’라는 영상을 선보였는데, 두 번째 챕터 ‘험난한 과거(A Bleaker Past)’에서 미국 시장에 도전한 현대차그룹의 초기 여정을 ‘포니엑셀’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CNBC는 당시 일본차 브랜드가 미국에 구축해 놓은 아시아 브랜드의 신뢰도, 뛰어난 가격 대비 성능 등을 바탕으로 포니엑셀이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포니엑셀은 미국 시장 진출 후 7개월 만에 판매량 10만 대를 돌파하는 등 1년 동안 총 16만8882대가 팔리며 현대차의 성장을 견인했다.

1999년까지 현대차 성장의 이면엔 ‘포니 정’이라 불린 정주영 회장의 넷째 동생 정세영 회장이 있다. 정주영 회장의 남동생 다섯 가운데 30년 넘게 그가 자신의 곁에 두며 사업을 함께 한 이는 정세영 회장이 유일하다. 대부분은 일찍 독립해 자신의 사업을 했다. 정세영 회장은 맏형 정주영이 창업하고 성장시킨 현대그룹 내에서 자동차 사업을 이끌며 그룹을 세계 10위권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불모지였던 한국 자동차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올려놓으며 한국 자동차업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가 현대차에 재직했던 30여 년의 시간 동안 개발·시판된 차종만도 포니엑셀, 쏘나타, 그랜저, 다이너스티, 아반떼, 에쿠스, 싼타페, 갤로퍼 등 20종에 육박한다. 하지만 그는 1999년 3월 2일 현대차에서 전격적으로 물러났다. 2월 28일 주총에서 이사들을 자기 사람으로 채워 이른바 ‘정세영 쿠데타’를 일으킨 지 불과 나흘 만에 퇴진했다. 타의로 ‘자동차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는 현대차 이임식에서 사가(社歌)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을 만큼 회사에 애착이 많았다.

정세영 회장은 2000년 11월 출간한 자서전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저서에서 그는 “32년 만에 (타의에 의해) 자동차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며 서운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1998년부터 현대차를 실질적으로 이끈 정몽구 회장은 도요타, 혼다와 같은 일본 브랜드의 모범 사례를 도입하는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대차와 기아를 합병해 비용 절감을 꾀했다. 양사의 플랫폼 공용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것.

정 회장의 ‘룰 브레이커’ 전략은 2000년 전격적으로 발표한 ‘10년·10만 마일 보증’ 서비스다. 보증 비용 부담이 만만찮았기에 여차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쏟아졌지만 그는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기업이 도약하기 위해선 경쟁사 모방만 하는 전략으론 불가능함을 알았던 까닭이다.

정몽구의 ‘룰 브레이커’ 전략, ‘10년·10만 마일 보증’
정 회장의 10년·10만 마일 보증 전략은 품질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진심을 미국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했고, 더는 값싼 자동차를 만드는 제조사가 아니라는 인식을 자연스레 확산시켰다. 또 그는 현장을 중심으로 한 ‘품질경영’과 ‘글로벌 경영’에 집중했다. 2006년 신년사에서 품질경영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정 회장은 “품질은 제품의 근본적 경쟁력인 동시에 고객의 안전과 감성적 만족에 직결되는 요소이며, 우리의 자존심이자 기업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정몽구식 품질경영’의 결과는 그룹 임직원들에게 스며들어 품질 향상으로 나타났고, 이는 판매 호조로 이어졌다.

품질경영과 함께 정 회장은 세계 곳곳을 돌며 현장을 직접 챙기는 ‘글로벌 현장 경영’에도 앞장섰다. 해마다 국내는 물론 해외 각 사업장을 방문, 임직원을 격려하고 각 시장 상황을 점검하며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그 덕분에 현대차·기아는 국내생산기지를 중심으로 중국 공장, 인도 공장, 터키 공장, 체코 공장, 슬로바키아 공장, 미국 앨라배마 공장과 조지아 공장 등 주요 대륙에 생산기지를 완공했고, 전 세계에서 생산·판매가 이뤄지는 ‘글로벌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정 회장은 불량품을 대대적으로 줄이기 위해 글로벌 생산 공장마다 전수검사 시스템도 도입했다. 그 결과 2004년 미국 시장조사기업 JD파워의 품질 조사에서 ‘뉴 EF쏘나타’가 글로벌 주요 브랜드의 간판 모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은 2015년 11월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출범으로 결실을 보았다. 제네시스는 정의선 당시 부회장이 초기 계획 단계부터 전 과정을 주도한 브랜드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 및 수익성을 향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2015년 이후 자동차산업은 전환기를 맞았고, 현대차도 성장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환경규제, 에너지 안보 위협, 화석연료 고갈 등 문제로 전기차 등 ‘친환경 미래차’로 산업 패러다임이 변한 까닭이다.

1위 되려면 ‘자동차를 넘어’ 그 이상의 것 봐야
‌정의선 회장의 ‘룰 브레이커’는 ‘자동차를 넘어’다. 그는 2021년 신년사에서 미래 모빌리티산업에 임하는 현대차그룹의 정체성을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글로벌 톱3 자동차메이커를 넘어 모빌리티산업에서 ‘게임체인저’가 되겠다고 선포한 것이자 이동과 관련한 모든 모빌리티 영역에서 현대차그룹이 브랜드를 펼쳐 보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과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로보틱스 등을 아우르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2021년 정 회장 사재 2490억 원을 포함한 1조 원을 투입, 로봇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후 로보틱스랩을 중심으로 로봇 기술 초격차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자율주행 분야에선 국내에서 레벨4 자율주행 로보셔틀 시범 서비스를 시행하는 등 상용화에 힘쓰고 있고, 그룹의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은 올해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버와 아이오닉5 기반의 무인 로보택시 사업을 개시한다.

고도로 자동화된 설계와 셀 기반 생산 시스템을 구축한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선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인 아마존과 협력해 온라인 차량 판매에 나서는 등 ‘판매 혁신’을 일으키며 룰 브레이커 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또 현대차그룹은 2020년 설립한 슈퍼널(Supernal)을 통해 2028년 미국에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2030년 이후 지역 간 항공모빌리티(RAM) 기체도 상용화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너무 진보된 기술을 다룬다는 이유로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정 회장의 도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구성 요소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딜로이트]
‌이 가운데 SDV(Software Defined Vehicle)는 현대차그룹이 차세대 모빌리티 분야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다. SDV는 차량 주요 기능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구동된다. 내연기관 시대 자동차는 하드웨어 중심의 기계였으나 SDV 시대 자동차는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일종의 ‘컴퓨터’로 여겨진다. 앞으로 차량의 가치와 핵심 경쟁력도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예측된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움직이는 스마트폰’이 될 전기차가 스스로 무선(OTA: Over The Air)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적용하고, 고객들이 휴대전화 앱처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개인 서비스 구독을 차량 내에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SDV로 전환하고 2030년까지 소프트웨어 기술개발에 18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4월 포티투닷 지분 93.2%를 인수했다. 포티투닷은 풀스택 자율주행 기술과 모빌리티 플랫폼을 구축한 스타트업으로, 인수 이후 그룹의 SDV 실현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향후 ‘퍼스트무버’로 거듭나기 위해선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가 사활을 걸고 있는 SDV 전략에서 현대차그룹이 어떤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현대차는 기존 자동차 제조사에서 이제 자율주행 서비스를 비롯,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모빌리티 프로바이더’로 거듭나겠다는 지향점을 새로 정립한 듯하다. 그에 걸맞은 기술경쟁력 확보는 물론이고 새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선대에서 해결하지 못한, 순환출자 고리로 묶여 있는 지배구조 문제와 정몽구 명예회장 타계 이후의 경영권 승계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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