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세대 전환 없인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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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의 텔레스코프] 20대 빌게이츠, 30대 정주영, 40대 이병철…

● 윈윈 시스템 파괴하는 이권 카르텔
● 기득권자 개혁보단 수구, 현재보단 과거로
● 카르텔 속 개혁 불가능, 외부 개혁 세력 필요
● 패러다임 전환 이끈 새 세대가 새 시대 이뤄
● 디지털·녹색 전환 직면, 세대 전환으로 혁신해야


모든 인간에겐 욕망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권력을 잡고 싶고, 대부호가 되고 싶고, 남들 위에 서고 싶고, 과시하고 싶고, 남들보다 더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들게 마련이다. 이러한 욕망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가치중립적으로 보고, 이 욕망을 어떻게 좋은 쪽으로 발현할지 연구해서 시스템·제도를 만드는 것이 인류의 진보를 가능케 한다.

예컨대 자본주의 제도는 내가 남의 욕망을 채워주면서 내 욕망을 동시에 달성하게끔 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운동화를 만들면, 그 운동화를 좋아해서 사는 사람으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면, 그 음식을 먹고 만족해하는 사람이 금전적 보상을 한다. 나는 수익을 올려 행복하고, 손님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 행복하다. 이를 ‘윈윈(win-win)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 덕분에 지금의 우리는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권 카르텔 커질수록 국가 발전 저해
하지만 윈윈 시스템에 만족하지 않고 욕망을 남들보다 더 쉽게, 훨씬 많이, 훨씬 오래 챙기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인생을 윈윈이 아니라 ‘제로섬(zero-sum)’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러한 탐욕 추구를 방지하기 위해 투명성(transparency)과 설명책임(accountability), 상호 견제(check and balance) 등의 장치를 만들고, 시대에 맞는 법질서를 구축한다. 그러나 욕망이 많을 뿐 아니라 지능도 좋은 사람들은 역시 이러한 장치를 우회하고, 억누르는 방법들을 생각해 낸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요즘 유행하는 말인 ‘이권 카르텔’이다.

이권 카르텔이란 같은 욕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어떤 명분을 만들든, 공통점을 찾든, 공범이 되든, 자신들만의 이권 사다리를 만들어 배타적 욕망을 서로 채워주는 집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학연·지연을 중심으로 하든, 보수·진보와 같은 이념과 명분을 중심으로 하든, 특정 직업군을 중심으로 하든 배타적 이권 카르텔이 생겨나면 그 안에 속해 줄을 잘 타는 사람들은 쉽게 이익을 본다. 반면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은 불공정의 희생양이 된다.

이권 카르텔 안에 있는 사람들은 카르텔을 영구히 지속하기 위해 공동으로 벽을 쌓고, 수성하는 수구세력이 된다. 처음에는 개혁적 차원에서 단합해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에서 시작했을지 모른다. 세월이 지나 그 공동체가 이권 카르텔로 변화하면서, 개혁적 세력도 수구적인 기득권 세력으로 변한다. 이러한 이권 카르텔과 기득권이 여기저기서 강력한 성을 구축하면 이들의 세계관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와 과거의 명분과 정통성 중심으로 강화된다.

대한민국과 같이 시장, 땅덩어리, 자원이 빈약·척박한 국가는 실력 위주 인재 선발로 끊임없이 미래의 시장을 개척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수구적 이권 카르텔이 강화될수록 미래가 아닌 과거, 세계가 아닌 국내에서 ‘조선시대 당파 싸움’ 같은 쓸데없는 싸움에 국가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개혁 세력만이 카르텔 파괴 가능
이권 카르텔은 공정한 경쟁의 공간이 아니라 카르텔을 끌고 나가는 지도자, 그 안에서 지도급 인사에게 잘 보여 출세하려는 추종자들로 채워진다. 실력보다는 충성·의리·투쟁력 등이 더 중요시되고, 그러다 보니 수장을 중심으로 전근대적 위계 조직이 생긴다.

공정한 경쟁과 보상 체계, 그리고 모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체계와 청렴한 공공영역이 있어야 공동체는 물론 나라가 미래로, 세계로 뻗어나가건만 공사 구별 없이 닫힌, 전근대적 카르텔 사회에선 국가가 동력을 잃고 침체기로 들어선다. ‘더 큰 대한민국’이 아니라 ‘더 작은 대한민국’으로 찌그러진다.

국가적 범위와 수준에서 형성된 이권 카르텔의 가장 위험한 폐해는 바로 시스템이라는 공공영역을 무너뜨리는 데 있다. 공사 구별이 안 되고, 법에 자기들만의 예외가 생기고, 국가를 카르텔의 이익 실현 도구로 사용하고, 실력·자격에 상관없이 자기 카르텔 사람을 요직에 앉히고, 기존 제도를 모두 무시하고 붕괴시킨다.

국가에 운이 있다면 이럴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강력한 개혁 세력이다. 개혁 세력은 기득권의 카르텔을 무너뜨리거나 약화시킨다. 또 공정하고 합리적인 새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현실에 뛰어든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근대 이후 시대에서 개혁 세력은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 선진국으로부터 배우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해 국내 및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다. 그리고 ‘연줄’이 아니라 ‘실력’으로 출세의 사다리를 올라간다. 올림픽 때마다 우리나라의 양궁이 세계 최고임이 증명되는 이유가 연줄과 카르텔이 아닌, 실력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시스템에 있는 것과 같이 국가도 그렇게 개혁하려는 세력이 근대화 이후 개혁 세력이다.

개혁 세력이 기득권 내부에서부터 나오기는 매우 어렵다. 배신과 반역이라는 전근대적 꼬리표가 붙고, 동참 세력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 리스크가 적고 쉽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영역에서는 양극단으로 진영화한 정치·경제 세력들이 이러한 이권 카르텔이다. ‘잘 하는 것’보다 ‘잘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세력이다. 이들에게 모임은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단합대회’일 뿐이다. 개혁 세력은 다른 곳에서 나와야 한다. 세대교체가 필요한 이유다.

패러다임 전환 이끈 건 새 세대
인류 역사엔 이전 질서가 새 질서로 변화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엔 전근대에서 근대로 바뀌는 19세기 말 패러다임 전환이 있었고, 현재 또 한 번의 패러다임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패러다임 전환이 생길 때 기득권 세대는 기존 패러다임에 갇혀 새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대처하지 못한다. 그래서 새 세력이 나와서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세력은 대개 새 세대가 담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직 생각과 마음이 열려 있는 세대이고, 기득권이라는 이권 카르텔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세력이며, 아직 달성하지 못한 욕망을 펼칠 새 기회의 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전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선구적 지도력을 발휘한 인물들의 연령을 살펴보자. 물론 시대 배경과 조건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현재와 일률적으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나이와 업적은 지금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근대화의 물결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보고 1884년 갑신정변을 추진한 급진 개화파의 평균 나이는 20대 초반이다. 그들 가운데 서재필이 19세, 가장 나이가 많던 김옥균이 유일하게 30대였다.

이들의 근대화 개혁이 실패한 후,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근대화 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정권을 잡은 군부 세력에 의해서다. 이들이 후일 한국 보수세력의 뿌리가 되지만, 당시에는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한 개혁 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지도층으로 등장한 당시 박정희는 46세에 대통령이 됐고, 김종필은 30대에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공화당 창당 작업을 했다. 그가 국무총리가 됐을 때 나이도 40대였다. 한국 산업화의 기초를 제공한 포항제철은 박태준이 40대에 키웠고, 정주영은 30대에 현대그룹을 일구기 시작했으며, 이병철은 40대에 삼성그룹을 본격적으로 확장했다. 이들의 근대화 개혁은 명암이 공존했지만 새 시대를 만든 개혁 세력이 새 세대에서 나온 것만은 틀림없다.

1970년 9월 29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신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왼쪽)와 김영삼 후보가 악수하고 있다. 이때 이들의 나이는 각각 46세, 41세였다. [동아DB]
‌한국 정치 패러다임을 바꾼, 이른바 ‘민주화 세력’도 모두 젊은 개혁 세력이 중심이 됐다. 반독재투쟁 앞엔 항상 ‘대학생’이라는 젊은 세대가 있었고, 민주화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김영삼과 김대중은 ‘40대 기수론’이라는 기치로 일찍이 40대부터 대통령 후보 및 정치지도자 반열에 올라섰다. 예컨대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면서 대권에 도전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41세였다. 이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대학생들은 후에 붙은 ‘386’이라는 별칭이 말하듯 30대에 이미 민주화의 리더가 됐고, 후일 진보 진영의 기득권을 차지하게 된다.

대한민국엔 세대교체만이 답이다
디지털 전환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한국의 IT세대도 다들 20대와 30대에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다. 안철수는 20대 후반에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고, 30대에 안랩을 키웠으며, 40대에 대선 후보급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이해진이 네이버를 설립한 것이 30대 초반이고, 이재웅도 20대 후반에 다음을 창립했다.

대한민국을 세계적 문화 강국으로 만든 K-팝의 아버지 이수만은 30대에 ‘연예기획사’라는 음악산업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었고, 박진영도 20대에 연예기획사 JYP를 설립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시대 전환과 새 동력 창출은 젊은 세대로부터 시작된다. 지금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대전환의 단초를 만든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모두 20대 초반에 각각 마이크로 소프트와 애플을 창업하고 키웠다. 아시아 근대화를 선도한 일본의 메이지 유신 주역들도 30대·40대 혁명가들이다.

지금 세계는 디지털 전환(DX)과 녹색전환(GX)이라는 거대한 전환 시기를 맞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로 국제질서 및 지정학 구도도 흔들리고 있다. 먼저 난 자가 나중 난 자보다 경쟁력이 없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세계는 대전환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먼저 난 기득권 세대가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의 이권 카르텔을 만들어 정권교체를 매개 삼아 이권 카르텔을 주고받고 있다.

진보 진영이든 보수 진영이든 변화하는 세계를 말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새 시대를 향하는 비전을 내세우는 쪽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꾸는데, 우리에게는 ‘오픈 AI’를 만든 샘 올트먼이나 ‘테슬라’를 만든 일론 머스크 같은 혁신가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대한민국은 기득권 카르텔에 의해 동력을 상실하고 침몰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명실상부하게 선진 강국으로, ‘더 큰 대한민국’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디지털 전환 및 녹색 전환을 이끌고 대처할 수 있는, 그래서 다시 대한민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젊은 세대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젊은 세대는 세계 무대에서 속속 증명하듯 단군 이래 가장 경쟁력 있고, 뛰어나고, 자유롭고, 글로벌한, 이른바 ‘황금 세대’다. 이제 대한민국엔 세대 전환만이 답이다. 국민들은 이권 카르텔을 수성하려고만 하는 기득권의 행태에 질리고 지쳤다. 그들로부터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합리적 민주주의 주도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도 유권자가 여론으로서 세대교체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이근
‌● 1963년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 교수

●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위원회 의장

●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 레벨’ 外


신동아 9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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