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하며 습득한 물품들 재구성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66. 10평 남짓한 공간이 관람객 5~6명으로 붐볐다. 점심을 앞둔 시간인데 누구의 것이었는지 모를 옷더미, 쌓여 있는 수십 장의 CD 앨범 앞엔 어김없이 전시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한편에선 게임 콘텐츠를 실행하며 도슨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관람객도 있었다. 이곳에선 7일부터 12일까지 ‘쓰레기 오비추어리’전이 열렸다. 동명의 기사를 기획한 경향신문 창간기획팀이 취재 과정에서 습득한 물품들을 재구성해 준비한 전시회다.
경향신문은 창간 78주년을 맞아 8월 중순 창간기획팀을 구성, 버려진 물건들의 생애사를 조명하는 기사를 준비했다. A국의 원료가 B국에서 제품이 된 뒤 C국에서 소비 후 버려져 D국으로 수출되고, 다시 E국에서 폐기되는 전 지구적 과정을 생산자, 운반자, 구매자, 중고 수출업자, 폐기업자들의 시각으로 이으려 했다. 다만 어떻게 하면 쉽게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 체험 콘텐츠 성격의 이번 전시회를 떠올렸다.
유정인 경향신문 기자는 “사람들이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이미 잘 아니까 어떻게 와 닿게 보여주느냐 그게 굉장히 고민이었다”며 “그래서 기사의 전체 콘셉트는 부고 기사 형식을 취하고, 취재 과정에서 폐기물을 받아와 전시회를 열자고 초반부터 결정했다. 독자들이 현장에 와서 이 폐기물들을 직접 보고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취재하면서 한 번도 재생되지 않은 채 버려진 80장의 CD 앨범과 60개의 미니앨범, 폐기된 옷 조각들을 얻어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최애 멤버’의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구매 즉시 폐기된 미니앨범 60개는 캔버스에 부속품을 이어 붙여 작품으로 만들었고, 80장의 CD 앨범 역시 탑처럼 쌓아 전시물로 승화시켰다. 덩그러니 놓인 수출용 옷더미(베일)는 주위에 주요 생산과 소비, 수출, 폐기 지역의 위도·경도를 표기해 뜻을 더하기도 했다.
이날 도슨트로 나선 박채움 경향신문 기자는 ‘소각장’이란 이름의 작품을 설명하며 “버려진 옷 조각으로 어떤 형태를 표현하면 좋을까 논의하다 소각장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팀원들 전원이 참여해 캔버스에 배경색을 칠하고 옷 조각도 붙이면서 작업했다”며 “다들 기사 쓰는 것보다 작품 만드는 걸 더 재밌어했다. 제작에만 2~3일이 걸렸는데, 전시회 와주신 분들이 경매로 내놔도 좋겠다고 말해주셔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7일 시작된 전시회는 12일을 끝으로 6일 만에 마무리됐다. 이 기간 다양한 지역에서 200여명의 독자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유정인 기자는 “전시회를 처음 준비하다 보니 장기간 전시를 할 정도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전혀 없었다”며 “일단 짧게, 집중적으로 전시를 꾸리자고 생각했다. 다만 감사하게도 다른 곳들에서 전시를 이어가겠냐는 제안들이 와서 더 보여드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회 기간 기자들이 전시회장에 상주하며 독자들과 대화한 점도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았다. 유정인 기자는 “전시회장에서 보여드린 전시물은 저희 취재 결과물인데, 그걸 두고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며 “정말 다양한 분들이 오셔서 기자들에게 자기 고민과 생각을 말씀해 주고 가셨는데, 남은 기사 취재를 위해 연락드릴 분도 생겼다. 저희 팀원 말이지만 기사의 유통기한이 전시를 통해 더 길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