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 디지털 문화 전문매체 와이어드(Wired)는 최근 ‘인터넷 아카이브 주요 저작권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The Internet Archive loses its appeal of a major copyright case)’ 기사를 통해 “항소법원이 인터넷 아카이브의 도서 디지털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아셰트 대 인터넷 아카이브(Hachette v. Internet Archive)’의 이전 판결을 유지했다”고 전했다. 기사는 항소법원이 “특정 상황에서 저작권 침해를 허용하는 공정 사용 원칙에 의해 대출 관행이 보호된다는 인터넷 아카이브 측 주장을 ‘설득력이 없다’며 배척했다”고도 부연했다.
이번 판결은 인터넷 아카이브가 2020년 3월 시행한 ‘국가 비상 도서관(NEL)’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다. 당시 인터넷 아카이브는 팬데믹으로 도서관들이 폐쇄되자 기존 ‘오픈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확장, 책의 실제 사본을 스캔해 디지털 사본을 대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특히 오픈 라이브러리는 ‘1인 1권’ 대출 제한을 뒀지만 NEL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책을 빌리는 것도 허용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학생, 연구자, 독자들의 책 접근성을 높인다는 취지였지만 프로그램은 곧장 작가, 출판사들로부터 ‘불법 복제’란 반발을 맞았다.
이에 인터넷 아카이브는 대출 제한을 재도입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2020년 6월 아셰트(Hachette), 하퍼콜린스(HarperCollins), 존 와일리 앤 선즈(John Wiley & Sons), 펭귄 랜덤 하우스(Penguin Random House) 등 대형 출판사들은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인터넷 아카이브는 자신들의 도서 대출 방식이 ‘공정 이용’ 원칙에 의해 보호된다고 주장했지만 2023년 3월 1심 판결에서 지방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심 판결과 같은 결과지만 특히 항소심 판결은 인터넷 아카이브를 ‘비영리단체’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앞서 지방법원은 인터넷 아카이브의 활동을 상업적인 것으로 해석했고, 이는 인터넷 아카이브 측이 자신들은 디지털 도서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란 점을 강조하며 항소 이유로 밝힌 지점이기도 했다. 달리 말해 항소법원은 인터넷 아카이브를 비영리단체로 인정하면서도 인터넷 아카이브의 도서 스캔 및 대출 등 행위를 저작권 침해로 판단한 셈이다.
최근 몇 년 새 생성형 AI 서비스의 데이터 학습을 두고 AI 기업과 언론, 창작자 사이에서 저작권 침해여부를 다투는 여러 소송이 제기된 가운데 이는 향후 관련 법적 판단 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례다. AI 기업이 이처럼 저작권이 있는 데이터를 사용할 때 주요한 근거 하나가 ‘공정 이용’이기 때문이다.
와이어드는 기사에서 “이번 판결은 저작권법이 특히 혼란스러운 시기에 내려졌다. 지난 2년 동안 생성형 AI 도구를 제공하는 주요 AI 기업을 상대로 수십 건의 저작권 침해 소송이 제기됐고 이 소송 피고 상당수는 ‘공정 사용’ 원칙이 그들의 AI 학습에 저작권 있는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을 보호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판사가 공정 사용 주장을 반박하는 주요 소송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