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장 내밀었던 후보 번번이 고배
지역 기반 약해 비례후보 포진 필요
정치권, 공감은 하지만 논의 무관심
인구 따지면 국회의원 6명 나와야
전·현직 포함 헌정사 국회의원 1명
지방의원도 고작 4명 불과한 현실
日은 참의원·중의원 등 다수 활약
저출생으로 이민국가 모색하면서도
막상 다문화인구 정치참여는 인색
지역기반 취약한 귀화·다문화 출신
비례제 의무할당 등 제도보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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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법무부·통계청에 따르면 1996년 이래 2022년까지 혼인 등의 이유로 귀화한 사람은 23만4233명이다. 2022년 기준 귀화인이나, 한국인 배우자와 혼인한 결혼이민자 가구를 뜻하는 ‘다문화가구’는 39만9396가구, 그 구성원인 ‘다문화인구’는 115만1004명에 이른다. 이는 한국 총인구(2022년 5167만2569명)의 2.2%에 해당한다. 인구비율로 계산하면 국회의원 정수 300명 중 6명은 다문화 출신이어야 자연스럽다.
실제 상황은 딴판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76년간 귀화인·다문화가정 출신 전현직 국회의원은 1명, 지방의원은 4명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누적 탈북민 3만4078명(지난해 12월 기준) 중 국회의원 3명(태영호·지성호 의원, 조명철 전 의원)이 배출된 것과 비교해도 미미하다.
현 21대 국회에서 귀화인·다문화 출신은 임기 만료 4개월을 남기고 지난 1일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한 녹색정의당 이자스민 의원(재선)이 유일하다. 필리핀계 이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한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 1호다.
이 의원에 앞서 국회의원에 도전한 귀화인은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최초의 귀화인 출신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기록된 필리핀계 헤르난데스 주디스 알레그레씨는 2008년 18대 총선(창조한국당 비례대표 7번)에, 러시아계 박노자 노르웨이 국립오슬로대 교수(한국학)는 19대 총선(진보신당 비례대표 6번)에 나섰으나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베트남계 원옥금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민공천심사단 투표에서 탈락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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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 정권에서 행정쇄신담당 특명대신 등을 역임한 렌호(蓮舫) 참의원(상원) 의원(입헌민주당)은 대만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 백진훈 전 참의원 의원(입헌민주당)은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의 다문화 2세 출신이다. 지난해 4월 중의원(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집권 자민당 소속 에리(英利) 알피야 의원은 부모가 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출신이다. 30대 여성인 에리 의원은 일본에서 나고 자랐고, 1999년 가족이 함께 귀화했다. 과거 조선적(朝鮮籍·해방 후 남북한 국적 비선택자) 출신으로 귀화해 대장성(현 재무성) 엘리트 관료를 거쳐 정계에 들어간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 한국명 박경재·1948∼1988) 전 중의원 의원이 4선 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한국의 지방참정권은 국정참정권이나 다른 나라의 지방참정권에 비해 제도적으로 선진적 측면도 있다. 외국 국적은 선거권이 아예 인정되지 않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지방선거에서는 영주권 취득 후 3년이 지난 18세 이상 외국인도 투표할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 귀화인 당선 사례가 나오고 있으나 전반적 상황은 국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미흡하다. 전현직 광역·기초의원은 4명이다. 현직은 전국 광역의원 872명 중 1명, 기초의원 2988명 중 1명에 불과하다.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계 아이수루 의원(민주당)이, 외국인 밀집 지역인 경기 안산시의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중국동포 출신의 황은화(민주당) 의원이 입성했다. 앞서 2010년엔 경기도의회 비례의원으로 몽골계 이라 전 의원, 2017년엔 울산 중구의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키르기스스탄계 오세라 전 의원이 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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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재 22대 4·10 총선 지역구 출마를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예비후보로 등록한 귀화인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실적으로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기반이 약한 귀화인·다문화 출신의 정치 참여를 돕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비례대표 후보 포진이 필요하다. 문제는 각 당이 다문화 참정권 확대 필요성에 말로는 공감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눈앞에 다가온 총선에서 비례대표에 귀화인, 다문화 출신의 발탁이나 우선순위 배치 등 구체적 논의에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의 경우 공천관리위원회가 가점 대상에 다문화 출신 후보를 포함하는 공천 제도를 발표했지만 비례대표에서 이주민 출신이나 다문화 출신을 배려하는 방안은 아직 논의된 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정광재 대변인은 “우리 당은 공천에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와야 한다는 원칙적 의견을 갖고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이주민 비례대표 배려는) 검토할 만한 사안이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했다.
야권에서도 이번 총선에서 이주민 비례대표 배려 계획을 마련한 정당은 없다.
민주당 다문화위원장인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에는 이주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점제도가 있다”며 “통합형 비례정당인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이 구성되면 구체적인 기준을 다 같이 논의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최근 합당해서 아직 소수자 배려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저희 입장에선 이주민 외에도 장애인 등 배려해야 하는 소수자들이 많아 내부적으로 논의를 해 봐야 한다”고 했다.
개혁신당(대표 이준석)의 양향자 원내대표는 “아직까진 비례대표에 대해 어느 당도 어떻게 됐다고 말하긴 어려운 단계”라고, 새로운미래(대표 이낙연) 박원석 책임위원은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 아직 스케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의무 할당 도입, ‘참정 의식’ 제고를”
폐쇄적인 우리 정치 문화에서 귀화인·다문화 출신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무 할당제 등과 같은 제도적 보완 장치 마련과 함께 이들의 참정 의지를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2000년부터 공직선거법에서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원 후보자의 50% 이상, 홀수 후보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한 것처럼 입법을 통해 비례대표의 일정 숫자 이상이나 당선 가능한 상위 순위를 귀화인·다문화 출신 후보에게 배정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귀화인 등이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건 그들만의 노력으론 불가능하다”며 비례대표 할당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야의 선거법 개정 논의가 지연되고 있는 만큼 법 개정 이전에 각 당이 귀화인·다문화 출신의 발탁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다문화 사회를 피할 수 없음에도 사회적 차별은 여전히 심각하다. 이들을 포용하고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양대당에서 이들이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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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연합뉴스 |
귀화인·다문화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해 관련 정책에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인식 개선 작업도 있어야 한다. 2019년 법무부가 실시한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투표에 참여한 영주권자는 23.1%, 귀화인은 54.1%로 2018년 지방선거 전체투표율(60.2%)보다 낮았다.
강원도의회 다문화연구회 간사를 맡은 박호균 의원은 “연고를 중요시하는 지역에서는 다문화가정이 의회에 진출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그럼에도 이주 외국인들이 원하는 정책적인 뒷받침을 위해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다.